경희.
About
the work
연극 〈개, 돼지〉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경희]를
극장이라는 물리적 경계 너머로 확장한 야외 장소 특정형(Site-specific)
연극 버스킹 프로젝트입니다.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운동가였던 나혜석의 주체적인 삶과 외침을 담은
텍스트를 들고 제주도 일대의 길거리와 야외 공간으로 나아갔습니다.
정형화된 무대 메커니즘을 덜어낸 자리에 제주의 자연과 우연히 마주친
시민들의 숨소리를 채워 넣으며, 일상적 공간을 순간적으로 예술적 해방구로
전복시키는 독창적인 거리 예술을 실현했습니다.
Synopsis
나혜석은 우리나라 여성으로서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작가이며
근대적 여권론을 펼친 운동가이다. 먼저 일본에 유학한 오빠의 주선으로
도쿄에 있는 사립여자미술학교에서 유학을 공부했다.
일본 유학 시절 여자유학생 학우회 기관지인 〈여자계〉 발행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에 맞서 여성도 인간임을 주장하는
단편소설 ‘경희(1918)’를 발표한다.
1919년 3.1운동에 여성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활동을 하다가
5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1921년에는 서울에서 개인전시회를 가졌던
그녀의 치열한 삶의 궤적.
밀폐된 극장의 백스테이지를 벗어나 제주의 푸른 바다와 바람,
그리고 낯선 길거리의 소음 한복판에 우뚝 선 경희.
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나도 사람이다"라며 스스로 인형이 되기를 거부했던
그녀의 뜨거운 고백이, 오늘을 살아가는 제주 시민과 여행자들의 일상 속으로
가감 없이 스며들며 시공간을 초월한 깊은 공명을 만들어낸다.
Director's
Note
"왜 연극은 늘 어두운 극장 안에서만 관객을 기다려야 하는가?"
이 작품은 극장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된 도전입니다.
시대에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했던 나혜석의 외침을
가장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안전한 극장의 틀을 깨고
거친 삶의 현장으로 직접 걸어 나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무대 장치도 조명도 없는 제주의 길거리는
그 자체로 거대한 날 것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배우들은 행인들의 발걸음 소리, 거센 바람 소리와 부딪히며
오직 단단한 몸짓과 목소리만으로 공간을 압도해야 했습니다.
관객과 무대의 경계가 완벽히 허물어진 이 연극 버스킹을 통해,
지나치던 시민들이 우연한 예술적 충격을 경험하고 잠시 멈춰 서서 주체적인
삶의 가치를 함께 고민하는 경이로운 순간들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극장을 떠난 연극이 어떻게 대중의 일상 속에 가장 생생하게 살아 숨 쉴 수
있는지 증명해 낸 값진 실험입니다.
Stills.
Photography — 공연 스틸컷